교회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 뜻이 깊이 와 닿은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게 각인된 교회의 이미지는 쉽게 왔다 쉽게 가고, 뜨거울 때 잠깐 친해졌다가 그렇지 않으면 서먹해지는, 가족보다는 불편하고 세상 모임보다는 익숙한 애매한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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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영 자매의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전도되고 쭉 양육되어 반듯한 청년이 된 은혜로운 모습에서는 어떠한 애매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면 모이는 일도 적고, 어떤 가치나 취미, 봉사 등을 위해 모이더라도 이처럼 인생주기까지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끈끈했던 친구들조차 각자 제 길로 흩어지고, 어쩌다 다시 만나면 예뻐졌다느니 그대로라느니 오래된 기억에 서로를 비추어보곤 합니다. 혈육이 아닌 청년들을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기억하지 않는 일은 특별한 경험입니다. 제가 아는 누군가의 아들 딸 중에 언젠가 만났을 때 '벌써 이렇게 컸네'라고 인사할 일이 없는 상대는 거의 없습니다. 오랫동안 같은 일상 공간에서 아무런 이해관계에도 얽히지 않은 채, 대화의 부담조차 느끼지 않고 피차 편안하게 공존하는 것, 그래서 서로를 언제나 어제와 오늘의 모습으로 마주하는 일은 너무도 가족적인 현상입니다. 한 때 흔했지만 지금은 일부만이 소속되고 주로 명절에만 출현하는 '대가족'보다도 더욱 가족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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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새로라 집사님의 간증이 있었습니다. 처음 믿음 생활을 시작한 교회를 아직까지 다니고 있음에 감사한다는 고백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놓치고 있는 교회됨과 성도됨의 덕이 무엇인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는 혈육의 가족과 마찬가지로 운명적인 차원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하나님이 선택하셨기에 우리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차원이 있습니다. 가라지가 판치는 어지러운 세상에 건강한 교회를 선택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선택보다 더 크고 중요한 섭리가 있음을 알고, 좋은 교회를 잘 선택하는 것을 너머 온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붙들리기를 소망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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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께서 자주 언급하셨던 '모두의 교회'라는 표현이 이번 주일에는 좀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사람은 옳다는 확신으로 행한 일에 대해서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선한 줄 알고, 자기가 멋진 줄 알고 당당히 행했는데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게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 부끄럽습니다. 요즘 문득문득 '우리 교회'에 대한 확신으로 똘똘 뭉쳤던 저의 옛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지곤 합니다. 영적 우월감을 공유하는 '내부자들'이 아닌, 스스로의 부족함을 기꺼이 인정하면서 그저 세상 곁에 머무는 공동체, 바울이 '내가 아무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던 그 순수한 신앙의 형태를 하늘땅교회에서 더디나마 배워가는 중입니다. 특히, 찬양 대회의 마지막 순서였던 저희 가족의 공연 영상이 유튜브 공식 채널에 고스란이 올라간 것을 보고, 역시 하늘땅교회다 싶었습니다. 자기과시적인 교회라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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